[매일경제]학교세워 탈북청년 정착 돕는 외환은행 북한 초대 지점장(21.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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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세워 탈북청년 정착 돕는 외환은행 북한 초대 지점장
김영우 해솔직업사관학교 이사장
경수로 현장 은행지점장 출신
`고난의 행군`때 北 주민에 연민
사재 털어 탈북자 지원활동
2013년 기술전문 학교 건립
탈북청년에 `고기잡는법` 전수
김영우 이사장. [박형기 기자]
김영우 해솔직업사관학교 이사장은 1997년부터 약 2년간 함경남도 신포항 인근 경수로 건설 현장에 설치된 외환은행의 초대 지점장으로 북한에서 근무했다. 북한은 당시 최악의 식량난인 '고난의 행군'의 정점을 보내고 있었다. 통계청은 유엔의 인구 총조사(센서스)를 바탕으로 1996~2000년 33만여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고 추산했다. 김 이사장은 "당시 목격한 북한 사회의 민낯에 온갖 생활고를 겪는 주민들에게 각별한 감정을 느꼈다"며 "방북 직전까지도 그들이 나쁜 사람일 것이라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피부에 맞닿은 그들은 이념 전쟁의 피해자이자 나의 동포였다"고 회상했다.
김 이사장은 2003년 외환은행이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인수되면서 1974년부터 30년간 일했던 직장을 떠났다. 그 대신 함경도에서 마주한 북한 주민들에게 받은 영감을 탈북민 대상 봉사활동으로 승화했다. 그는 2005년부터 남북문화통합교육원 이사와 이사장을 연달아 맡으며 탈북 아동과 청소년 심리치료 등에 앞장섰다. 또 탈북 청소년들의 대안학교인 셋넷학교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청소년 교육에 힘썼다. 당시 남한 청년과 결혼하는 여학생을 위해 임진각으로 가는 기차 한 칸을 통째로 빌려 학생 50명이 하객으로 참여한 결혼식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는 탈북민들을 보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았다. 김 이사장이 내린 결론은 일자리였다. 그는 "이들이 남한에서 자신의 족보를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했다"며 "그 발판으로 직업학교를 통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는 과정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해솔직업사관학교는 2013년 그 같은 소명을 품고 세워졌다. 만 18세부터 30대 초반까지의 남성 탈북 청년들을 전문 기술자로 양성하는 일을 최대 과제로 설정했다.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한 결정이었다. 김 이사장은 교육과정에 대인관계 기술 등 한국 사회 정착에 필요한 정서적 지원 프로그램을 반영하고 동시에 탈북 청년들의 공부와 취업을 도왔다.
김 이사장은 "학교를 세우기 전 봉사활동을 하면서 은행원으로 모았던 재산은 다 소진했다"며 "학교 운영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30%를 충당하고 나머지는 후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를 거쳐간 탈북 청년들은 올해까지 약 80명에 달한다. 이 중 30여 명이 현재 공부하고 있거나 전문대학을 다니며 기술을 배우고 있다. 50명의 탈북 청년들은 취업에 성공하고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현재까지 가족을 꾸린 세 명의 학생이 어떤 맥락에서 보면 졸업생인 셈"이라며 "한편으로는 전문기술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고 생산현장 숙련공 수준의 직업을 얻은 약 20명의 학생들이 마음에 밟힐 때가 많다. 그들이 재교육을 받아 보다 튼튼한 기반을 갖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일경제 2138호 A25면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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